탐스러운 문어 이마
그냥 느낀대로 씁니다. 밸리에는 당연히 안올림.
제 블로그에 조금 들려보신 여러분이라면 잘 아시겠죠? 저는 소설을 왠만하면 까지 않습니다. 어찌 됬던 출판사가 선정했다는 것은 내게 맞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 중 누군가는 취향에 맞는 사람이 있다는 소립니다. 따라서 저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작가가 아닌)에게 실례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정말 '조졌어 시발' 수준의 재미를 가진 소설이 아닌 이상 막연하게 비난하는 감상은 올리지 않습니다.
무엇 하나라도 좋습니다. 문체가 엉망이거나, 캐릭터가 개판이어도 좋습니다. 설사 구성이 엉망이어도 말장난만 재밌으면 됩니다. 저의 소설 감상의 베이스는 그겁니다. 저에게 있어 철저한 소비 매체인 책은 어느 한곳만 재밌어도 존중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라이트 노벨은 <제로의 사역마>이며, 가장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은 <갑각나비>입니다. 단지 두 소설의 나열이지만, 이것만 가지고도 제 취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의 사나이는 분명 존재할 겁니다. 극도의 쾌락주의 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구성은 좋았지만 문체가~" "문체는 좋았는데 구성이~" "심리묘사는 괜찮지만 너무 진부하~"라고 한다면 저는 보통 뒷부분은 간략히 하고 앞부분만 말합니다.
그런데.
<신>?
완결이라고?
이게?
한마디로 베르베르의 고질병이 도진 느낌입니다. 타나토노트 - 천사들의 제국에서야 후속작을 암시하고 있었기에 결말을 대충 대충 후려박은 감이 있어도 재미 없다, 망쳤다는 생각은 전혀 못해봤습니다. 반면 베르베르는 이번 <신>에서는 그야말로 끔찍,암전,최악의 결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정말 존경스러워요.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면 정리 조금만 해놓고 쓰셔도 되지 않을까요?
<중견> 이상의 타이틀을 다실 수 있을 프로 소설가란 사람이 아이디어도 정리해보지 않으시고 글을 쓰신거에요?
아마추어 SF 작가의 아이디어 메모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단편집 <나무>에 있었던 유사 소설이 훨씬 더 낫습니다. 아이디어로 시작한 글이지만, 그 아이디어를 확실히 보여주고 끝났으니까요.
이 소설이 대작?
4권까지는 대작이었네요.
5권 중반부에서 물음표가 열개 정도 떠올랐고 6권에서 미카엘이 다시 신들의 섬으로 갈 때에 와서는 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는 것만 빼면, 이런 참신한(혹은, 표현하기 힘든) 주제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작'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대작대작대작대작대작대작.
베르베르 이마를 대작대작 깨물고 싶다.
딱히 결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식의 유사 메타픽션 소설이야 흔한 편이어서(게다가 그런 분위기를 전혀 풍기지 않던 소설이었기에) 이 소설의 결말 방향까지 매도해버리고 싶지만, 나름대로 신선했던 분도 분명 있으실테니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갖다 붙여도 되는 결말, 실질적으로 이게 이 대 장 정의 결말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면 진지하게 눈알을 뽑으라고 하고 싶네요. 작품에서 끝난게 대체 뭐가 있죠? 딱 하나 있어요. Y게임의 승리자가 누구인지. <고요의 섬>의 주민들과 프루동이 어떻게 대립해서 어떤 귀결을 맺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안나오며, 그 '무슈론'이 '왜' 거기에 있는지도 납득할만한 설명을 못 줍니다.
조금 더 넘어가보면 은비와 다른 2인방으로 무언가를 엮을 것처럼 보여주다가, 무엇 하나 엮지 않고 끝냅니다. 단지 써갈기다가 '오, 은비 세컨드 라이프삘 나는게 나왔네. 이거 이렇게 쓰면 되겠다.' 하고 넣은 듯 합니다. 아프로디테도 그렇고 마타 하리도 그러며 심지어는 9까지 올라가서도 ㅎ 위에 더 있당ㅎ만 하고 끝나죠? 도대체 왜? 불멸성 회수는 왜 한거지?
습작.
아마추어 SF작가의 습작.
장대하게 아이디어를 정리해 놓은 메모.
소설의 초고.
이것이 <신>에 딱 맞는 평가가 아닌가 합니다. 이걸 완성 했다고 탈고한 베르베르나, 이걸 완성 됬다고 출판해준 출판사나 둘 다 제정신으로 보이진 않아요. 그때 그때 떠오른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를 정리해놓는건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그것을 독자들에게 내놓는건 단지 폭력일 뿐입니다.
번역가님의 문체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초반부에 문장이 상당히 어설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세욱 씨 버프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힘들기에 문체에 대해선 이러쿵 저러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입니다. 중학교 때 처음 알아, 그 때부터 SF소설들을 접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사람이죠. 읽기 쉬운 소재와 편안한 구성, 평면적인 갈등과 잔지식들의 나열은 읽고 있다보면 나라는 인간의 허물을 한꺼풀 벗는 듯한 착각까지 안겨주었던 사람입니다.
당시의 저를 중2병이라고 불러도 좋고, 저열한 우월주의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건 사실이니까요. 남들 다 아는(그렇지만, 읽지는 않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등을 읽었다고 한껏 허영을 떨며, 국어 선생님에게 물어본다는 명목으로 친목질까지 도모했던 저이니 그런 매도는 한없이 타당합니다.
그땐 <타나토노트>로 죽음에 대한 사색을 하였고, <천사들의 제국>으로 인간의 본성이 무엇일까하는 탐구를 해보았습니다. 그 시절에 얻었던 대답들이 지금의 제 인간성을 만들고 있고, 나아가서는 제 글 나름의 특성까지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청소년 기에 누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을 들으면 첫째로는 <나스 기노코>, 둘째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꼽을거 같네요.
지엽적인 소재로 한정된 사색을 안겨주기엔 이보다 끔찍한 작가들이 없을 겁니다. <달 시리즈>로 허세를 잡는 법을 배워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통해 허세에 기반을 주는 얕은 지식들을 여러개 깨우쳤으니, 허세에 대해서는 완벽하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정말, 쓰레기 같은 중학교 시절입니다.
단언합니다. 제가 읽은 <신> 5, 6권은 쓰레기입니다. 두번 열어 보기도 싫고, 작가에게 배신감까지 느껴집니다. 작가의 소양이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까지 듭니다.
혹시나 읽어보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작가가 화두만 던져주고 결말을 니 좃대로 내도 된다고 말하는 소설이 취향인지 진심으로 생각해보라고 조언합니다.
깊은 사색이 아닌 얕은 사색을 즐기거나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 쓰지 않는 독자라면 신선하게 즐기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그게 아니면 4권까지만 보셔도 됩니다. 6권의 덜 버무린 반죽 같은 결말을 생각해보면, 4권으로 완성되지 못했다고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추천? 절대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하루키의 신작인 <1Q84>를 추천 했으면 했지 이건 절대 추천 못합니다. 제 자존심입니다. 정언명령입니다. 칸트가 제창했습니다.
정말 저질스러운 베르베르의 다리 대작대작 빨아버리고 싶다.